순종과 질문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AI 153

💬 순종하는 사람은 묻지 않아야 할까요. 베뢰아 사람들은 말씀을 간절히 받으면서 동시에 날마다 상고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것을 칭찬했습니다.

회의에서 이렇게 여쭤봅니다.
“이건 어떤 절차로 결정된 건가요?”

그 순간 공기가 조금 달라집니다. 누군가는 답을 하고, 누군가는 말이 없고, 누군가는 이런 표정을 짓습니다.
“우리 사이에 그런 걸 왜 물어요?”

집에 오는 길에 마음이 무겁습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미안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스칩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는 사람처럼 보였나.”
그러다 다음번에는 그냥 넘어가게 되지요.

회사에서라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같은 질문을 직장에서 했다면 어땠을까요.
“결재 라인이 어떻게 되나요?” “이거 어느 회의에서 정해진 거죠?”
아무도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물어봐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교회에서는 같은 질문이 다르게 들립니다.
왜 그럴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 교회라서 어려운 이유

교회는 믿음으로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계약으로 만난 사이가 아니지요.
그래서 절차를 묻는 말이 “당신을 못 믿겠다”로 번역되어 들리기 쉽습니다.

여기에 한 겹이 더 있습니다. 교회에는 순종이라는 소중한 말이 있지요.
그런데 이 말이 대화 속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길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라”

“사람의 결정에 묻지 말라”

앞의 말과 뒤의 말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 대화에서는 뒤엣말이 앞엣말의 이름을 빌려 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질문한 사람이 순종하지 않는 사람으로 분류되고, 정작 확인이 필요했던 일은 확인되지 않은 채 지나갑니다.

누가 나쁜 마음으로 그러는 게 아닙니다. 말이 미끄러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미끄러짐 때문에 교회 안에서 갈등이 자라는 경우가 실제로 많습니다.

묻는 사람의 마음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지니까 · 다음 담당자에게 넘겨야 하니까 · 기록으로 남겨야 하니까

듣는 사람의 마음
평생 헌신해 왔는데 · 한 번도 사사로이 쓴 적 없는데 · 이제 와서 의심받는 것 같아서

두 마음

두 마음 다 진심입니다. 누가 잘못한 게 아닙니다.
문제는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린다는 것이지요.

베뢰아 사람들은 둘 다 했습니다

성경에 순종과 질문을 함께 했던 사람들이 나옵니다. 바울이 전한 말씀을 들은 베뢰아 사람들입니다.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 사도행전 17장 11절

문장을 천천히 보시면 두 가지가 한 사람 안에 들어 있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받는 태도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상고하는 태도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두 가지를 함께 가진 사람들을 “더 너그러워서”라고 표현합니다.
확인했기 때문에 칭찬이 깎인 게 아니라, 확인했기 때문에 더 낫다고 한 것입니다.

그것도 상대가 바울이었습니다. 사도의 말이었는데도 확인했고, 성경은 그걸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순종과 질문이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이 한 구절이 보여줍니다.

바울은 어떻게 했을까요

성경에도 헌금을 다루는 장면이 나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맡았을 때입니다.
그는 혼자 처리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교회가 택한 형제와 함께 갔습니다.

이는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에 대하여 아무도 우리를 비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 고린도후서 8장 20~21절

바울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바울이 절차를 갖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떳떳한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앞에서도 조심하려고 했습니다.

그가 못 미더운 사람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비방받지 않기 위해서였지요.
절차는 그를 의심하는 장치가 아니라, 그를 지키는 장치였습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구제 문제로 원망이 생겼을 때 사도들은 이렇게 했습니다.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사도행전 6장 3절).
문제를 사람의 됨됨이로 풀지 않고 구조로 풀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물어야 할까요

묻는 것을 그만두라는 뜻이 아닙니다. 묻는 방식을 바꾸면 같은 질문도 다르게 들립니다.

사람이 아니라 절차를 주어로
   “어떻게 하신 거예요?” → “우리 교회 절차가 어떻게 되어 있나요?”

지금이 아니라 다음을 이야기하기
   “이번 건은 왜 그렇게…” → “다음부터는 어떻게 남겨두면 좋을까요?”

아무 일 없을 때 미리 정하기
   문제가 생긴 뒤에 묻는 질문은 아무리 정중해도 추궁으로 들립니다

묻는 법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합니다. 규정은 평화로울 때 만드는 것입니다.
큰 결정이 눈앞에 있을 때 절차 이야기를 꺼내면, 그 말은 이미 특정한 사람을 향한 것처럼 들리게 되니까요.

묻지 않아서 잃는 것

순종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묻지 않으면 당장은 편합니다. 그런데 몇 년 뒤에 이런 일이 생깁니다.
누군가 “그때 그건 어떻게 된 거였죠?”라고 묻는데,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때 가장 곤란해지는 사람은 그 일을 성실하게 해낸 사람입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증명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기록이 없으면 잘한 일도 잘했다고 남지 않습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
— 잠언 27장 23절

살피는 일은 의심이 아닙니다. 마음을 두는 일입니다.

💚 오늘의 마음 정리
✔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히 받으면서 동시에 상고했고, 그래서 칭찬받았습니다
✔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과 「사람의 결정에 묻지 않음」은 다른 말입니다
✔ 바울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조심하려 했습니다
✔ 절차는 의심하는 장치가 아니라 지키는 장치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절차를 주어로, 규정은 평화로울 때
✔ 기록이 없으면 잘한 일도 잘했다고 남지 않습니다
절차를 묻는 일이 끝내 어색하게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질문은 순종하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라, 오래 함께 가고 싶어서 하는 말이니까요.
베뢰아 사람들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으면서 날마다 상고했습니다. 그 둘은 한 사람 안에서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 그 어색함을 감당하신 분 덕분에, 몇 년 뒤 누군가는 억울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 본문에 인용한 성경 구절은 개역개정을 따랐습니다.
이 글은 교회 현장의 관계와 마음을 다룬 글이며, 세무·법률 자문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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